북벽
-박해람
어항 속 달팽이가
어항을 타고 올라온다
간다
온 입을 유리에 붙이고 아니, 온 내장을 붙이고 미끄러운 밥을
먹고 있는 것처럼, 로프도 없이 고소공포증도 없이 북벽에 매달
린 등반가의 실패한 정상 정복처럼 절벽의 표면장력에 만근한
노동자처럼 거미의 거미줄처럼 로프공의 로프처럼 점액질의 밧
줄을 타고 달팽이는 미끄럽고 아찔한 유리 표면을 먹으며 천천
히 오거나 간다
달팽이들의 몸에는 몰아친,
몰아치고 있는 회오리 하나쯤 꼭 있다
피치 못해 북벽 밑에서 이름만 묻는 장례를 치른다는 부고를
받았다 희박한 숨을 쉬다 갔노라, 는 첨부언이 있었다 이쪽저쪽
과 아찔한 높이와 믿지 못할 바닥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떨어진 곳이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모를 것이다
돌아앉거나 돌려 세우지 않았더라도
북벽은 흐느끼는 사람의 등 같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두 /박해람 (0) | 2022.09.27 |
---|---|
자본론 / 이은심 (0) | 2022.09.26 |
노을은 고양이 / 홍계숙 (0) | 2022.09.22 |
이 뜨거운 시 / 김승희 (2) | 2022.09.20 |
아주 작은 점의 세상 / 천수호 (0) | 202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