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북벽 / 박해람

주선화 2022. 9. 24. 10:41

북벽

 

-박해람

 

 

  어항 속 달팽이가

  어항을 타고 올라온다

  간다

 

  온 입을 유리에 붙이고 아니, 온 내장을 붙이고 미끄러운 밥을

먹고 있는 것처럼, 로프도 없이 고소공포증도 없이 북벽에 매달

린 등반가의 실패한 정상 정복처럼 절벽의 표면장력에 만근한

노동자처럼 거미의 거미줄처럼 로프공의 로프처럼 점액질의 밧

줄을 타고 달팽이는 미끄럽고 아찔한 유리 표면을 먹으며 천천

히 오거나 간다

 

  달팽이들의 몸에는 몰아친,

  몰아치고 있는 회오리 하나쯤 꼭 있다

 

  피치 못해 북벽 밑에서 이름만 묻는 장례를 치른다는 부고를

받았다 희박한 숨을 쉬다 갔노라, 는 첨부언이 있었다 이쪽저쪽

과 아찔한 높이와 믿지 못할 바닥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떨어진 곳이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모를 것이다

 

  돌아앉거나 돌려 세우지 않았더라도

북벽은 흐느끼는 사람의 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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