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봉자네 국밥 / 함진원

주선화 2023. 8. 8. 12:44

봉자네 국밥

 

-함진원

 

 

속이 허할 때 먹었던 국밥 한 그릇

딸은 암뽕순대국밥

나는 애호박 국밥을 먹는다

 

열감기로 아픈 손자는

입도 안 벌리는데

국밥 먹으면서 서로 말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잠 못 자고

아픈 아이 돌본 피곤이 얼굴 한 가득

속이 허할 때 먹었던 밥을 요즘 들어 자주 먹는다

 

어린이처럼, 어린이답게 살자며

어린이날 꽃다운 나이에 어쩌라고

불 구덩이 속에 들어갔는지

오늘은 뜨건 국물을 밀어넣으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가

머리 풀어 갈대숲을 이룬 날

국밥을 먹는다

 

잠이 한가득 눈에 들어있는데 편히

한숨 못 자는 딸이 짠해서

국물 들이킨다 뜨건 국물 앞에서

어서 뜨거울 때 먹으라고 하지만

저도 살아보려고 엄마 등에서 안 떨어지는

손주가 짠하면서도 속이 상한다

 

배고픈 다리 건너

속이 허한 사람이 갈수록 많은지

한 그릇 허기를 비우는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서는 봉자네 국밥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