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자네 국밥
-함진원
속이 허할 때 먹었던 국밥 한 그릇
딸은 암뽕순대국밥
나는 애호박 국밥을 먹는다
열감기로 아픈 손자는
입도 안 벌리는데
국밥 먹으면서 서로 말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잠 못 자고
아픈 아이 돌본 피곤이 얼굴 한 가득
속이 허할 때 먹었던 밥을 요즘 들어 자주 먹는다
어린이처럼, 어린이답게 살자며
어린이날 꽃다운 나이에 어쩌라고
불 구덩이 속에 들어갔는지
오늘은 뜨건 국물을 밀어넣으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가
머리 풀어 갈대숲을 이룬 날
국밥을 먹는다
잠이 한가득 눈에 들어있는데 편히
한숨 못 자는 딸이 짠해서
국물 들이킨다 뜨건 국물 앞에서
어서 뜨거울 때 먹으라고 하지만
저도 살아보려고 엄마 등에서 안 떨어지는
손주가 짠하면서도 속이 상한다
배고픈 다리 건너
속이 허한 사람이 갈수록 많은지
한 그릇 허기를 비우는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서는 봉자네 국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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