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간다는 말
-구판우
묻어간다는 말은 식탁에서 파생된 자동사일까
식탁은 입맛을 홀리는 무덤이다
끼니마다 다소 빈약해 보여도 육체를
거스르는 법이 없다
문 걸어 잠그는 일 없이 곧이곧대로 묻어간다는 말이다
콩나물은 다소 예외이기는 하나
삼키는 데 무리가 없고, 소화하는데 힘들이지도 않는다
삼킬수 있다는 말, 한통속으로 묻어가는데 괜찮다는 말
묻어가는 일에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없고
시시비비 없이 묻어간다는 말,
사람 냄새가 폴폴 묻어나는 맛있는 단어라서
갈비를 굽거나
봄동에 쌈장, 뭇국을 끓여놓든
충무김밥을 쌓아놓든
한 마당에 섞이고 버무릴 줄 안다
식탁은 몸과 그렇게 하나로 묻어가는 중이다
완장 찬 공무원이거나 미용사, 목회자
여행자든 행려병자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들이대나 손사래 치지 않는다
빈속을 채운 다음에는 무조건 묻어가는 법
하늘처럼 넉넉한 품이 아니어도
품은 그대로 또 하루를 묻어가고
반색하는 몸은 끼니마다 황홀한 식탁에 묻어간다
* 구판우 시집 「청소부 나라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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