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 문학인이 뽑은 최고의 시

주선화 2008. 1. 8. 22:21

2007 문학인이 뽑은 최고의 시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장옥관

 

 


은빛 수레바퀴 밤새 하늘을 굴러다닌다는

전월사(轉月寺),

동짓달 북향의 골짜기는 옴팍해서 달빛 담기에

맞춤한 옹배기랍니다


도시 인근 흔히 보는 이 암자 주인은

올해 갑년을 맞은 비구니,

법명이 달풀(月草)이라 하시는군요

여섯 살 나이로 경주 함월산(含月山)에서

계를 받았다는데요


먹물옷 말고는 딴 맘 딴 옷 가져보지 못한 채

다 늙은 사람의 심정이사 뒷산 오리나무나 짐작할 뿐

제 잇속이나 셈하는 복장 시커먼 도둑이 알 바 아니겠지요

그러나 인연 닿은 곳마다 굳이 달을 갖다 붙이는

여자의 마음은 알듯 말듯 하구요


낯모르는 사람이 내미는 찐빵 이천원어치에

빗장지른 마음 덜컥 열어젖히는 혼자 사는 늙은이,

해 짧고 달 긴 동짓달 속사정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서두

휘영청 초저녁에 뜬 달이 한잠을

자고 나와 봐도 그 자리,

다시 깨어 봐도 그 자리,

도무지 눈꺼풀 없는 밤이라는군요


그런 밤이사 얼음조각 머금은 듯

차고 시린 달이 어둑새벽까지 띠살문 밝혀서

안 그래도 가난한 우리 스님의

몸이 더욱 말라붙었겠구요

뒷산 솔숲 소쩍새 목쉰 소리에

마당 가슴팍 찬 우물도 덩달아 깊어졌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조금 아는 것이어서

세상의 일을 어찌 이루 다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장지문 바로 건너

대웅전 마루 아래 뱀 소굴이 숨어 있다는데요

법당이든 부엌이든 심지어 하루는 늦은 밤

티브이 위에 똬리 틀고 혀 날름대고 있더라는 이야기


생각건대 달풀 우거진 보름달 속에는

수천수만 실뱀들 똬리 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 달빛,

얼키설키 뒤엉켜 뭉쳤던

은빛 실뱀들 오리오리 풀려

날이면 밤마다 마룻장 아래 모여드는 건 아닐는지

그래서 늦은 밤 법당 안이

이따금 해바라기처럼 환해졌던 것인가


이리 몸 섞고 저리 몸 뒤엉켜 겨울잠 자는

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동짓달 덩두렷이 보름달로 굴러가고,

어떤 못된 뱀은 아궁이 통해

불 꺼진 몸속으로 자꾸 파고들고,

그때마다 처마를 받든 두리기둥은

화들짝 뿌리가 굵어졌겠지요


그예 날 저물어 기어코 잡는 손길

뿌리치고 일어서다 보니 아뿔싸,

기왓골 타고 굴러온 달.

달풀스님 목에 얹힌 달덩이에 혓바닥이

두,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