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 조혜정
물소리
조혜정
비가 오는데 굳이 화분에 물을 줄 필요가 있니?
비는 그냥 내리는 거구요 이 화분은 제가 주는 물을 먹고 자라거든요
―말괄량이 삐삐
물소리가 들렸던가
꿈 바깥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가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차오르는 물소리와 함께
밀려오고 밀려갔던가
물소리는 바닥을 적시고
커튼을 타고 올라 유리창을 적신다
액자 속 물고기들이 액자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누군가 풀어놓은 그림자가
물소리와 함께 둥둥 떠오른다
제가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제가 헤매는 건 누구?
출구를 찾지 못해 밤마다
이야기 속에 갇히는 건 누구?
작은 목소리가 더 작은 목소리에게 속삭인다
뼈로 만든 집에서 그림자와 놀고 있으면
외출하는 엄마의 빨간 입술이 속삭인다
흙 같고 물 같은 얼굴이 무수히 피었다 지는
이것은 털실로 짠 스웨터의 무늬를 따라가는 이야기
가다가 풀린 올 사이로 발목이 빠지는 이야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갔는데 아직도
이 방에 남아 있는 이야기
나는 내 꿈에 갇혀버렸지
일곱 살은 일곱 살에 갇혀버렸지
물소리가 들렸던가
꿈속의 나무는 색깔이 다른 나뭇잎들을
뚝뚝 떨어뜨리고
―《현대시학》2008년 2월호
조혜정 / 1963년 충남 당진 출생. 목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2007년 《시와반시》 하반기 신인상, 2008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