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물소리 / 조혜정

주선화 2008. 2. 19. 13:44

물소리

 

 

조혜정




                                      비가 오는데 굳이 화분에 물을 줄 필요가 있니?

                      비는 그냥 내리는 거구요 이 화분은 제가 주는 물을 먹고 자라거든요

                                                                       ―말괄량이 삐삐


 

물소리가 들렸던가

꿈 바깥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가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차오르는 물소리와 함께

밀려오고 밀려갔던가


물소리는 바닥을 적시고

커튼을 타고 올라 유리창을 적신다

액자 속 물고기들이 액자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누군가 풀어놓은 그림자가

물소리와 함께 둥둥 떠오른다


제가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제가 헤매는 건 누구?

출구를 찾지 못해 밤마다

이야기 속에 갇히는 건 누구?


작은 목소리가 더 작은 목소리에게 속삭인다

뼈로 만든 집에서 그림자와 놀고 있으면

외출하는 엄마의 빨간 입술이 속삭인다


흙 같고 물 같은 얼굴이 무수히 피었다 지는

이것은 털실로 짠 스웨터의 무늬를 따라가는 이야기

가다가 풀린 올 사이로 발목이 빠지는 이야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갔는데 아직도

이 방에 남아 있는 이야기


나는 내 꿈에 갇혀버렸지

일곱 살은 일곱 살에 갇혀버렸지

물소리가 들렸던가

꿈속의 나무는 색깔이 다른 나뭇잎들을

뚝뚝 떨어뜨리고





                                                         ―《현대시학》2008년 2월호


 

조혜정 / 1963년 충남 당진 출생. 목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2007년 《시와반시》 하반기 신인상, 2008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