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어디로? / 최하람

주선화 2008. 2. 29. 11:36

어디로? /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2001년>

 

 

* 최하림(69) 시인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 김지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신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던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