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세벽 뒷골목에
내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나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위에
네 이름의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떠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75년>
* 출간되자마자 금서가 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그의 본명은 영일(英一 한꽃송이) 이다
거리 입간판에 조그맣게 써있던 '지하' 라는 글자를 보고 지었다는 필명'지하地下가 아닌 지하芝下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김지하시인은 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감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상함에 휩싸여 ' 잘가시오 나도 뒤따라가리다' 라는 혼자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투사 김지하는 '생명사상가' 김지하로 변신한다
감옥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
" 시란 어둠을 /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 수정하는 것 //
쓰면서 /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 " (' 속 3 ' )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시인
(정끝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