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주선화
2008. 3. 11. 11:19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939년>
*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여리고 가날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무우밭이었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까만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김기림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 한다. 그는 30년대 이상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라즘을 주도하면서 서구문명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 을 동경했다
분단과 전쟁은 그를 남북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 비운의 모더니스트 '로 만들어버렸다 (정끝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