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현대시 신인상
<현대시> 2008년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 당선작
![]() ![]() 2008/04/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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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08년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 당선작 _ 최형심 조혜은
냉장고의 효능 / 최형심
잔소리쟁이 남편을 냉장고에 넣기로 했다. 1미터 70, 키에 맞는 S전자 냉장고를 주문했다. 딩동! 특제 냉장고가 도착했다.
맛이 간 입술은 아래 칸 신선실, 휘두르기 좋아하는 왼손은 야채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밀어 넣었다. 집이 고요하다.
아침마다 16년 숙성된 남편을 해동시킨다. 먼저 그의 입을 넣고 15분짜리 해동에 타이머 눈금을 맞춘다. 땡! 해동된 입에서 술 냄새와 니코틴 냄새가 확 풍긴다. 밤새 토하다만 라면 발이 엉겨있다. 고춧가루 확 뿌려 볶음용으로 랩을 둘둘 싸놓는다. 부풀었던 집이 가라앉는다.
출근시간 20분전. 땡! 밥상을 엎던 발을 해동한다. 타임오버! 발길질하는 불안한 발. 간이 덜 배었군. 엎질러진 남편을 주워 담아 냉동실 깊숙이 넣는다.
전자레인지를 돌린다. 땡! 밤새 고스톱을 치던 손이 꾸물꾸물 화투장을 찾는다. 눈 깜짝할 사이 내 뺨을 갈긴다. 얼얼하다. 나는 설익은 남편을 랩으로 묶는다. 냉동고의 온도를 확 올린다. 으, 365일 지겨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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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바이오그래피 / 최형심
5분 전의 내가 충전을 끝내는군요. 10분 후의 내가 자명종을 누르며 아침을 켜요. 이제 5분 전의 나는 전원이 들어오는군요. 10분 후의 내가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열어요. 밤새 까맣던 세상의 모니터가 켜지네요. 5분 전의 내 머리위로 푸른 바탕화면이 뜹니다. 오늘 바탕화면의 온도가 약간 내려갔습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오늘 가장 먼저 클릭해야 할 것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죠. 10분 후의 내가 찾아가야 할 경로 : 영등포구→ 여의도동 → 사이버빌딩 → 4989호 →안쪽 두 번째 자리.
5분 전의 내가 10분 후의 나에게 보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10분 후의 내가 건성으로 메일을 읽습니다. 5분 전의 내가 커피를 뽑아들고 10분 후의 내가 주식 동향을 살핍니다. 종일토록 둘 중 어느 누구도 고개 들어 바탕화면을 쳐다보지 않았는데 하늘은 혼자 푸르렀습니다.
10분 후의 내가 5분전의 내가 지난달에 다운로드로 깔아놓은 새 애인 아이콘에 접근합니다. 5분 전의 내가 보낸 메시지에 그녀가 보낸 입맞춤이 10분 후의 내 뺨에 뜹니다. 5분 전의 나, 경고 메시지를 띄웁니다. 자판이 바쁘게 입을 놀립니다. 갑자기 창 하나가 둘 사이에 끼어듭니다. 10분 후의 내가 5분 전의 나를 덮쳐 5분 전의 나는 읽지 못하는 파일이 되었습니다.
10분 후의 나, 전원이 꺼집니다. 바탕화면에 어둠이 깔립니다. 오늘밤은 별도 뜨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복사하는 꿈속. 5분 전의 내가 10분 후의 나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리부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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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 최형심
누군가 골목을 깎고 있다
껍질처럼 벗겨지는, 물 젖은 좌판 여인들
일수를 찍으러 대머리가 지나가고
길가에 쪼그린 고추 배추 시금치 헐값에 베어져나간다
야반도주한 계주 때문에
부글부글 속이 끓어
소금을 치며 버틴다는 새우젓장수
등이 시린 고등어 장수
와르르, 고등어 상자에 얼음을 쏟아 붓는다
몇 년째 변비를 앓고 있는 순대장수
도마에 썩썩 순대를 써는 동안
과부의 전대를 입질한 제비 한 마리
휘파람 불며 지나간다
떨이수박 한 통을 내놓은 광주댁
쩍, 배 가른 수박을
한쪽씩 베어 문 아낙들
푸념처럼 퉤퉤 수박씨를 뱉는다
막다른 골목
껍질 벗겨진 해가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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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 수료(국제법 전공). 현재 미국 MD Kirk School of Law(통신대학) 재학중.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국제협력실 연구원. 주소 : 수원시 장안구 정자2동
[출처] <현대시> 2008년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 당선작 |작성자 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