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봄날 나의 침묵은 /조용미

주선화 2008. 4. 29. 10:46

봄날 나의 침묵은 /조용미

 

 

 

 

불행이란 몸을 가짐으로써 시작되는 것

몸이 없다면 어디에 불행이 있을까*

봄날 나의 침묵은 꽃핀 나무들로 인한 것,

하동 근처 꽃 핀 배나무밭 지날 때만 해도

몸이 다시 아플 줄 몰랐다

산천재 앞 매화나무는 꽃 피운 흔적조차 없고

현호색은 아직 벌깨동굴 곁에 숨어 있다

너무 늦거나 빠른 것은 봄꽃만이 아니어서

한잎도 남김없이 만개한 벚꽃의

갈 데로 다 간 흰빛을 경멸도 하다가

산괴불주머니 텅 빈 줄기 푹 꺼져들어가는 속을

피리소리처럼 통과해보기도 하다가

붉은 꽃대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이 견딜 만하면 아팠던 때를

잊어버린다 내 몸이 늘 아프고자 한다는 걸,

누워 있으면 서 있을 때보다 세상이 더

잘 보이는 이유를 또 잊어버린다

통증이 살며시 등뒤로 와 나를 껴안는다

몸을 빠져나간 소리들 갈데 없이 떠도는

꽃나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