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봄을 울다 /최영숙

주선화 2008. 6. 17. 12:18
봄을 울다
- 백련사 우물가

쉬잇, 조용히 해, 우물 옆 명부전에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앉았다 사람소리에 뒤돌아보는 여인의 눈알이 흠뻑 울고 난 토끼처럼 빨갛다 젊어 아직은 등이 곧은 여인의 가부좌 튼 무릎은 어느 눈물의 아픈 뼈마디인가 두레박을 풀어 바닥에 차오르는 맑은 물 한 바가지를 퍼올리면 젖는 건 마음만이 아니다 검은 우물물에 대고 아, 소리내어본다

바람이 풀렸다 고이는 자리마다 환하게 쓸리는 고요 빈 절 마당을 향하여 누구도 말이 없고 아무도 가진 적이 없다 우리 중 누가 우물물에 대고 이름을 부르게 될까 우물 옆 명부전에 이름 석 자 올리는 다음 생 다음다음 생 누대에 걸친 눈먼 눈물을, 저기 터지는 봄빛 속으로 어디만큼 가야 그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