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
2008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
赤記 /장석원
다스려지는 자의 눈빛으로
적들의 피를 바라보듯 햇빛 너머를 응시한다
죽은 그를 빨아올려 허공에 뱉어낸
나무의 적의를 나는 알 것 같다
젖어 있는 나무의 뿌리를
그를 휘감은 검은 핏줄의 악력을
아버지의 목덜미를 깨물 듯 나무에 혀를 박는다
단풍의 아가리에 머리를 쑤셔 박는다
그가 나를 사랑한 후에 쏟은 피
빨아 먹힌 후 그 몸은 빈 자루에 불과할 것이다
목 매달린 죄인처럼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확산되는 피의 영역에 갇혀 나는 처단되기를 기다린다
나의 눈구멍으로
모든 것이 빨려든다
거기 고요가 점화된다
붉은 고요에 감염되어 아버지를 기다리며
석양 속에서 나는 존다 빠르게 잊혀지기를 꿈꾼다
어둠이 이마를 만지자 나는 번지듯이 건너간다
가장 근원적인 혁명은 사랑하며 홀로 부패되는 것
그의 먹이가 되는 것 그를 먹이는 것
나를 흡수하여 점점 붉어지는 아버지
밖으로 허물어지면서 몸피를 키우는
소모되고 사라지려는 저 붉음이
사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형식
식탁과 아버지의 지구과학/장석원
빈 내장 같은 식당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양파가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화강암과 현무암 의자 중 한 곳에 앉으세요
어떤 압력에도 변성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균일한 표면에 흠집을 낸다면
이곳의 모든 것들은 종말을 맞을 것입니다
식탁 위에서 녹색이 붕괴됩니다
점판암 같은 잎사귀는 눅진해집니다
토마토 오이 바나나는 산화질소처럼
부글거리는데 소금은 붉어지고 붉어져요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부드럽고 질긴 식도에서
베타카로틴과 라이코펜은 흡수되지 않습니다
다시 공복이 찾아들 때 침묵은 그갈그갈 긁혀요
암석에 뿌리를 내리고 암석을 해체하는
모든 식물들을 우리는 먹을 수 있어요
빠르게 분해되는 막내딸의 웃음처럼
식물들을 씹으며 씹으며 더 먼 곳으로
내려가는 중이에요 매일같이 충적됩니다
어둠을 배경으로 지직거리며 함몰되기도 합니다
아직 15분이나 남았습니다 곧 우리는
폭발하겠지요 비산되겠지요
냄비 속에서 분해와 융합이 랄랄라 부글거립니다
함께 모인 식구들은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아버지의 식사
식탁의 조직의 시스템의…… 질서를
먼지와 먼지의 질서와 곧 파괴될 우리의…… 뒤를
지우는 검은 구름을 철과 니켈의 출렁임을
전부 먹어치웁니다 규칙과 체계와 균형 그리고
질서, 여러분의 질서, 세계의 심연을 떠다니는
먼지의 질서의 가족의
또한 백악기의 식욕 앞에서 아버지
켁켁, 마비된 것처럼 켁켁, 페퍼포그처럼
멀어집니다 축소됩니다 탄맥이 사라집니다
그러다 채굴될 것입니다 우리의 연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