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사하촌의 봄 /유홍준

주선화 2008. 7. 23. 14:32

사하촌의 봄  /유홍준

 

 

 

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가 슬었다
연화대 위 부처의 눈동자에
허옇게

백태가 꼈다

시치미 뚝 떼고 제 똥 위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부처,
저 지독한 부처의 똥냄새를 지우려고 날이면 날마다 피워대는
대웅전의 싸구려 향냄새

뭐라고, 대웅전이 아니라 여긴 영안실이라고?
뭐라고, 영안실이 아니라 여긴
똥덩어리 위에 허연 곰팡이 백련이 피어 있는

천년 묵은 해우소 연못이라고? 뭐라고, 연화대가 아니라
부처가 앉아 있는 저곳은 궁둥이 싸늘한 변기, 뭐라고?

치질 걸린 부처처럼 퍼질러 앉아 바라보는
절 밑 사하촌.....

담장 밑에 쪼그려 앉아 동백 몇그루
지금
시뻘건 꽃 떨어뜨리는 중, 시뻘건 피똥 싸지르고 있는 중

만화방창 꽃들의 똥냄새에 취해 재배 삼배 절을 올리고
엉거주춤 괴춤 추스르는 오늘은
오래오래 변비 앓던 꽃들의 배설일

백태 낀 부처의 눈동자 속으로
뻐얼건
동백 꽃덩이들 뚝뚝 싸갈기는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