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미당 문학상 후보작 4

주선화 2008. 8. 15. 09:22
제8회 미당문학상 후보작 4 

 

 

   가방 / 송찬호

 

 

 

가방이 가방 안에 죄수를 숨겨

탈옥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시내에 쫘악 깔렸다

 

교도 경비들은, 그게 그냥 단순한

무소가죽 가방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한 때 가방 안이 풀밭이었고

강물로 그득 배를 채웠으며

뜨거운 콧김으로 되새김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했다

 

끔찍한 일이다 탈옥한 죄수가 온 시내를 휘젓고 다닌다면

숲으로 달아난다면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면

뿔이 있던 자리가 근지러워

뜨거운 번개로 이마를 지진다면,


한동안 자기 가방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열쇠와 지갑과 소지품은 잘 들어있는지

혹,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리지 않는지

그 때묻은 주둥이로 꽃을 만나면 달려가 부벼대지는 않는지

 

 - (현대한국시 2008. 여름호)

 

 

 

 송찬호 약력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 1987년 <우리시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 10년 동안의 빈 의자(94), 붉은 눈 동백,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 수상 : 김수영문학상, 동서문학상

 

 

 

 

“이미지 중시 … 그게 시 쓰는 개성”

 

  발랄하기 그지없다. 가방이 ‘그 때묻은 주둥이로 꽃을 만나면 달려가 부벼대는’ 상상이라니. ‘여성들의 로망’이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 통하는 가방이 콧김을 내뿜는 무소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장난기가 넘친다.

 

  하지만 언어가 명랑하다고 주제의식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원시성, 건강한 자연을 잊고 사는 현대인”을 박제가 된 가죽 가방을 통해 들여다본 게다. 남들과 사물을 달리 보는 게 시인의 덕목이라면, 그 재능에서 송찬호 시인을 따를 이는 없어 보인다.

 

  ‘드럼통 반 잘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서 노래를 하였소 / (…) 그의 로드 매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 (…)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 버렸소 / 삼류 인생들은 저렇게 처마 밑에 쭈구리고 앉아 初老를 맞는 법이오’(‘칸나’ 중)

 

  드럼통에 핀 칸나는 길거리 가수요, 그 옆에 버려진 낡은 가방은 ‘로드 매니저’란다. 그들은 통틀어 ‘삼류 인생’이다.

 

“쓸쓸히 이름없이 살고 있는 40~50대 서민들의 일생이랄까요. 화분에 칸나가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서 사라지듯, 일어나고 소멸하는 게 허무하지 않은가….”

 

  코스모스는 ‘신상품’에 빗댔다. ‘지난 팔월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 / 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코스모스’ 중) 서정의 극치이자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마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상품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문태준 예심위원은 “대상에서 아주 색다르고 이질적이라 할 만큼 생경한 속성들을 끌어낸다”고 말했다.

 

  그런 독특한 시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시인의 대답이 의외로 심심했다. “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훈련된 거라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를 중시하는 편이라서요. 저의 시 쓰는 개성이자 특징이죠.”

 

  그의 시가 원래 이렇게 동화 같은 색채를 띠었던 건 아니다. 죽음이나 흙 등의 묵직한 화두를 선명하게 붙잡아냈던 시인이다.

 

  “시 세계는 기존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표현은 재미있고 경쾌하게 하는 편이죠. 시가 변화나 모색에 의해 물처럼 흐르는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될 일이죠. 재미있게 쓰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경쾌함은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고양이’ ‘유채꽃’ ‘나팔꽃’ ‘칸나’ ‘소나기’ 등…. 마치 초등학교 백일장 시제 같다.

 

  “시적 소재에 얼마나 가까이 가야 가장 정확하고 자세하게 내면의 진정성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 두루두루 살펴보는 관점에서 단순명료하게 사물의 이름으로 제목을 정했지요.”

 

  그 사물도 대개는 자연에서 얻은 소재다. 시인은 “그들이야말로 삶을 가장 잘 성찰해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반백의 시인이 혹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게 아닌가 했더니, 실은 시의 근본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광호 예심위원은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과한 시인이 이제는 동시에 가까운 화법과 발상을 보여준다. 천진하고 무구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글 =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