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고구마를 깎다
주선화
2008. 11. 24. 11:47
고구마를 깎다 / 조정인
창밖에 크고 낯익은 어둠이 와 있다 默音의 실핏줄로 얼기설기 잇대 뭉친
몸통, 어둠은 폐활량이 크다
어둠이 기른 착한 구근들, 통채로 묵음인 고구마를 깎다가
근성처럼 이빨이 근질거렸다 고구마 생살에 잇자국이 남았다
당신과 내가 갉아먹은 것은 서로의 슬픔이다 칼날에 묻어난
흰 혈혼이 명치쯤에 태생이 침묵인 것들의 지문을 남긴다
자줏빛 몸뚱이가 춥고 슬퍼 뵈는 고구마, 우리는 일생
타자의 슬픔을 헐어 제 공복을 채운다
고구마 깎는 소리가 한때는 꽃이었을지도 모르는 다족류처럼
식탁을 기어다니는 저녁, 어느 물류창고에선가 설치류들은
자루를 뚫고 고구마를 갉다가 큼큼한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또록이며 고개를 갸웃대리라
구근을 갉는 쥐의 이빨이 제 일용하는 슬픔에 줄무늬를 새길 때
칼을 쥔 손목에서 흘러나가는 하염없는 마음은 당신께 어떤 무늬로
패는 것일까 나는 일생, 침묵하는 당신 가슴에 대고 바스락거리며
어둠의 모음과 자음을 새기리라 때때로 사파이어확석이 된
검푸른 고독의 단면을 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