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문학나무 신인상 2009년
주선화
2009. 9. 7. 17:31
해고 통보 / 오석륜
1
복숭아밭에 우박이 내렸다
기습적인 하강이었다
복숭아 몇 알 굴러 떨어진 채
시체처럼 누워있다
패인 상처 속을 떠돌다 빠져 나오지 못한 바람이
상처를 에워싸며 테두리를 따라 누런 얼굴로 앉아 있다
마지막까지 복숭아를 지켰을 이파리 몇 장
찢어진 해고통보서처럼
우박을 가득 안은 채 처박혀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폭설도 이겨내고 태풍도 이겨낸
나무들의 노동과 노래를 들으며
몸을 키우고 남부럽지 않은 당도를 키웠을 복숭아가
삼세한 바람의 결과 햇살의 보호를 받으며 제 빛깔 드러낸 채
새로운 꿈을 빚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의 중심에는
우박의 이빨자국보다 더 강렬하게
살고 싶어서 더 열심히 살고 싶어서
크게 저항한 목소리가 숨어 있다
바람이/ 아직도 살아있을 몇 개의 영혼들을 불러 모으며
윙윙 소리를 내고 있다
2
며칠 전부터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는 아버지는
우박 맞은 복숭아처럼 해고당했으리라
끝까지 복숭아를 지키려고
우박에 저항했을 이파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제기의 이력서를 쓰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라도 세상을 담굴 줄 아는 당신의 열정이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
상처 난 부위보다
상처 나지 않은 부위가 더 많은 것이 그래도 다행이지 않느냐,
상처 난 곳에 살고 있던 영혼을 잊지 않으면 된다, 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랑의 이력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