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화 2009. 10. 28. 10:38

백일홍 / 신덕룡

 

 

 

  저 안에 누군가 앉아 있다.

  시월의 문턱을 막 넘어선, 환한 절정

 

  가스라진 귀밑머리 축 처진 어깨위에 몰아쉬던 한숨들 덕지덕지 많다. 힘들었겠다. 가지마다 피우고 지우고 지운 자리에 또 꽃피웠으니 떨어져 누운 꽃잎들 모두 전생이었을 터, 여러 생이 한몸이었구나. 바싹 말라 비틀어진 자리가 경계다. 한 번도 저쪽으로 넘어가거나 이쪽으로 훌쩍 건너뛰어 보지 못한

 

  그 길, 반들반들 닳았겠구나

  한 시야(視野) 급하게 트이는 걸 보면.

 

 

 

         시집『아주 잠깐』서정시학 2009

 

 

 

            시인의 말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쓸쓸한 건 없다.

  어제보다 아름답기를, 깊고 그윽해졌기를

  바라지만 그건 소망에 불과하다. 소망의 엷은

  꺼풀을 벗겨내는 순간, 어둡고 그늘진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일쑤다. 그러니 내 자신을

  그대로 들여다볼 마음이 주춤거리는 것은 당연

  하다.

 

   지난번『소리의 감옥』 이후 두 번째 시집이다.

  한 걸음 더 디뎠으나 조심스럽다. 위로하고 싶다.

 

               2009. 한여름

                   신덕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