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몰래, (김충규)
주선화
2010. 1. 21. 15:12
. 몰래, / 김충규
달의 주름이 깊은 걸 보니 아직도 달을 향해
기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달을 한 바퀴 돌아온 새들은 이곳에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저 달 속 붉은 영안실,
언젠가 내 영혼이 그 속에 머물 것이니
진정 아끼는 마음으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에까지 서로의 마음이 함께 이르러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때의 내가 한 여자에게 말했던 기억,
달빛을 받고 서 있으면 그 기억
벌레처럼 스멀스멀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고 나지막이 달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내 하루는 저물었다
달 아래 저수지처럼 움푹 머물려 있는 먹구름
알을 부화하는지 빛깔이 더 검어졌다
저수지가 넘치면 비의 정충들 꼬리를 흔들며
허공을 헤엄쳐올 것이다 어쩌면 저 먹구름은
달의 근심이 낳은 사생아가 아닐는지
달은 숨이 차서 점점 희미해지고 붉은 영안실에서
누가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에까지 서로의 마음이 이르면
몰래,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 건 어느 쪽이었나?
- 시집『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시인의 말
死後엔 극지를 떠도는 샤먼이 되고 싶은데…
내가 詩라고 쓴 것은,
사후의 呪文이 되기 위한
중얼거림에 불과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