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새떼를 베끼다
주선화
2010. 3. 2. 15:04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한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데 하나는 날아간다
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
고, 그러므로 공중이다, 라고 쓴다
울음빛
남자가 운다. 남자는 오래 울고, 오래 우는 남자의 울음은 웅덩이로 고여서,
울음 고인 웅덩이에 들어앉아 울고 있는 남자가 훤하게 들어다 보인다. 남자는
그치지 않고 울고, 울음 우는 남자의 등줄기가 다 잠기도록 남자의 울음빛은 깊
다. 또는 울음 우는 남자의 목줄기가 다 씻기도록 남자의 울음빛은 맑다. 남자는
아직 울고, 남자가 울지 않는다면, 왜, 아무 까닭없이, 저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맑아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