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사람을 쬐다 / 유홍준

주선화 2010. 8. 10. 14:08

사람을 쬐다 /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小雪

 

 

하늘에서도

 

빗자로로 쓸 수 있는 것이 내려서 좋다

 

동글동글 손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이 내려서 기쁘다

 

잠시겠으나

 

그늘 쪽 어깨에만 눈을 얹고 있는 구층 석탑처럼

 

묵묵히 서 있고 싶다  이 겨울은

 

창호지 같이 얇은 서러움으로 竹을 칠까 붉고 푸른

 

깃발처럼 펄럭여 볼까 아니야 아니야 울타리 쪽으로 밀어 부쳐놓은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것이나 바라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