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감은사지에 들다 / 주선화

주선화 2010. 9. 7. 10:54

감은사지에 들다 / 주선화

 

 

춥다. 참 바람 맑아서

몸을 뉘인 풀들도 땅으로 코를 박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떼들 탑신으로 모여들고

탑신은 하늘과 통신하며 층층이 주절주절거리며

각국의 언어들이 한곳으로 밀집하여 일제히 뿌리내려

포효하는 울음소리 저 멀리 길게 들려온다

땅속으로 스며들 듯 울음소리 한번 깊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람만 서걱일 뿐

그림자 남겨놓지 않는다

수세기의 걸음이 그러했으리라

미네르바로 종일 시끄러운 문화도 알지 못했으리

흐르는 바람의 방향 따라 몸을 움직이며

텅 빈 들녁을 본다

주춧돌 사이사이 비쳐드는 햇살 따라 눈길 따라가며

시간을 잊고자 그냥 잊고자

해종일 가슴 뜯으며 부딧치고 있다

 

 

*시애 4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