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천강문학상 수상작

주선화 2010. 9. 15. 10:29

토구 / 박은영

 

 

 

 

 

나는 삽 한 자루를 가지고 부화했다

땅을 팔 때마다 부하게 일어나는 흙먼지

배냇짓을 잊어버리고 땅파기에 열중한다

밤늦도록 땅을 파며 놀던 나의 멱살을 쥔 아버지처럼

손아귀 힘이 강해진다 파도 파도 배고픈 날들

밥그릇 수만큼 삽은 커다래지고

손톱은 딱딱해져 삽날에 찍혀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비이이- 구덩이로 고여 드는 울음,

물기 많은 한숨이 원을 그리며 퍼진다

한 삽 한 삽 퍼 올린 흙더미에 아내가 딸려오고

부화한 새끼들이 배고픈 줄도 모른 채

흙가루를 날리며 웃어댄다

움켜쥐는 법을 터득한 후 빨라진 삽질의 속도,

밥그릇이 쇳소리를 내며 바닥을 드러낸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자락

수평선 안쪽으로 각혈처럼 노을이 번진다

세상이 한 삽 가득 어둠을 떠먹는 시간

갈기를 세운 사자자리별똥별에 어깨는 움츠려들고

삽자루를 쥔 흙투성이 손은 굳어 펴지질 않는다

이제 삽을 내려놓아야 할 때

한평생 파놓은 깊고 어두운 구덩이

겨우, 내 한 몸 뉠 자리다

 

 

* 땅강아지 혹은 땅개, 땅개비라고 불리는 곤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