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나뭇잎 꽃게

주선화 2010. 10. 19. 10:48

나뭇잎 꽃게 / 배한봉


가을이면 나무는
동물성을 가진다
꾸물꾸물 바글바글 나무마다 지천인 꽃게
햇빛이 잘 익혀놓은 나뭇잎 꽃게

저것 봐라, 저도 애타는 한 생각이 불타오를 때는
팔랑팔랑 공중을 날아
하늘을 바다로, 구름을 은신처 모래펄로 삼는다

그러다가 땅에 내려와 기어 다닌다
바스락거리며 소소바람 파도에 몸 뒤집으며
붉은 영혼을 흘리는 식물성 꽃게

소녀들은 책갈피에
꽃게를 끼워두었다가
어른이 되면 추억이라는 꽃게해물탕을 끓여먹는다지
아프고 슬픈 날
그 나무 아래 묻어둔 편지를 꺼내 읽으며
처녀 때의 감성을 게살처럼 발라먹는다지

이쁜 집게발에 물리고 싶어 내가 쫓아다니던
꽃게는 어디 갔을까
한숨을 포옥 내쉬는 산국화 노란 꽃그늘

시린 밤 오기 전에
뜨겁고 붉은 생각을 새겨야겠다는 듯 분주하게
창천 바다에 뛰어드는 꽃게
워즈런즈러니 내 심장을 뜯어먹는 가을 꽃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