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겨울 강에서 / 문태준

주선화 2010. 11. 8. 11:58

겨울 강에서 / 문태준

 

 

슬픔은 슬픔이어도 강 어부가 얼음낚시를 하려 얼음에 뚫어놓은 모란꽃만 한 구멍

같았으면

그대 가슴에도 몸이 투명한 빙어떼가 노는가

 

얼음 구멍 아래

치마 한 감 거리 빛 속

 

반짝이는 빛이었구나 빛의 한 마리 몸이었구나,

찬 없는 밥을 삼키던 누이는

머릿수건 올려 찬물 한 동일 이고 돌아오던 키 작은 내 누이는

 

 

 

서리

 

 

겨울 찬 하늘 한 켜 살껍질을 누가 벗겼나

 

어느 영혼이 지난밤 꽃살문 같은 꿈을 꾸었나

 

갓 바른 문풍지 같고 공기로만 빚은 동천산 첫물

 

사락사락 조리로 쌀을 이는 소리가 난다

 

 

 

자루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초봄 뱀눈 같은 싸락눈 내리는 밤 법씨 한 자루를 꿔 돌아오던 家長이 있었다 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나는 난생처음 마치 내가 작은댁의 자궁에서 자라난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입이 뽀족한 들쥐처럼 서러워서 아버지, 아버지 내 몸이 무러

워요 내 몸이 무러워요 벌써 서른 해 전의 일이오나 자루는 나를 이 새벽까지 깨워

나는 이 세상에 내가 꿔온 영혼을 생각하오니

 

  오늘 봄이 다시 와 동백과 동백진다고 우는 동박새가 힌 자루요 동박새 우는 사

이 흐르는 銀河와 멀리와 흔들리는 바람이 한 자루요 바람의 지붕과 石榴꽃 같은

꿈을 꾸는 내 아이가 한 자루요 이 끊을 수 없는 것과 내가 한 자루이오니

 

보리질금 같은 세월의 자루를 메고 이 새벽 내가 꿔온 영혼을 다시 생각하오니

 

 

 

그맘때에는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만지작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 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옆을 지나가 보았다

 

무른 나는 금강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만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뢰를 따라갔을까

 

여름 우뢰를 따라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