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적멸 / 강연호

주선화 2011. 7. 6. 12:50

적멸 / 강연호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은 허기지다

그래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래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혹은 그대의 텅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