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도둑들 / 최정례

주선화 2012. 1. 26. 17:56

도둑들/ 최정례

 

 

양말을 빨면 꼭 한 짝은 사라진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장롱 서랍도, 침대 밑도 아닌 그 너머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양말 짝도 도둑처럼 날마다 진화하는가

문틀이 어긋나는 집을 떠나

허방의 나라를 발명하려고

 

꿈속의 한 구석을 오려내고

몸을 숨기는 것들

눈 뜬 구슬처럼 사라지는 것들

 

화장터 굴뚝 끝에서 연기로 흩어진 이가

이것이 나다, 나야라고

말해줄 리는 없다

 

꿈의 계곡 자갈돌 옆에

반짝이는 구슬이 있었다

주우면 그 구슬 아래 그 아래

다 줍지 못했는데 반짝이며 굴러갔다

 

무엇 때문인지 눈이 내렸고

무엇 때문인지 그가 왔다 갔다

 

운동화 끈 하나 제대로 못 매니?

신발 끈을 묶어주던 손

아득한 계곡 속에 낯익은 손이

사라진 구슬들을 굴리고 있었다

 

생시처럼 왔다 갔다

한밤중에 깨어나

생각해보니 그렇다

눈인지 흰 꽃잎인지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