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붉은 양파는 붉다 / 천융희

주선화 2013. 7. 9. 12:42

붉은 양파는 붉다 / 천융희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진작 알겠다

 

사는 일 더러 그렇다지만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라지만

도마 위 붉은 양파 하나

칼을 지나자 화악 길이 파문 진다

 

겹 가장자리마다 붉게 매달린

궤도의 단면

습관적인 듯 슬픔이 치밀한 형식 갖추고

하얀 실뿌리 같은 생

바닥 중심으로 붉게 확장되어 있다

 

삶, 때론 물컹해 보여서

열 손톱 세워 한 겹

또 한 겹 벗겨 낼 때마다

한 생이 통째 눈물 나도록 맵고 아린 것을

궤적이 온통 자줏빛으로 물드는 것을

저기 저

날 세우듯 모로 누운 여자

헐거워진 겁껍질에 싸여

마지막 궤도 위 서성이는 중이다

눈꼬리 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