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주선화 2013. 11. 18. 13:22

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

저 홀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은 아닐까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게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 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장작 패는 법

 

 

때가 되어 베어진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에겐 추억이 있다네

잘린 나무토막을 보면 나이테가 보이지

나이테가 나무의 온몸에 결을 만들고 있지

결을 따라 바람이 드나들고

물이, 말하자면 나무의 피가 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장작을 팰 땐 포정*이 소를 다루듯 해야 하네

무리한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나무가 이룬 결을 따라 도끼날을 집어넣어 주면 돼

마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었던 그 모습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천장사가 육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에게 먹이는 조장처럼 말이야

포정의 소는 뼈와 살이 다 분리되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제 몸에 칼이 들어와 후비고 다녔다는 걸 몰랐다잖나

무엇보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가 물이었던 시절

나무가 바람이었던 시절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가 미리 내놓은 길을 찾아

길을 넓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나무가 쩍 박수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네

주의할 점도 있지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장자葬子에 나오는 소 잡는 데 도가 튼 백정

 

 

 

우산이 좁아서

 

 

왼쪽에 내가

오른쪽에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 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참돔

ㅡ 한창훈

 

 

소설가 한창훈의 책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어딘가에

"참돔회엔 물결무늬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거 시가 되겠다 싶어 한창훈에게

그것 내 시에 가져다가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그게 갸한테 있는 것인디 내가 어쩔 거여 갸한테 물어야제" 하더라

살다 보니 참돔에게 허락받을 일도 있어서 참 난감하였으나

분명한 것은 참돔에게 있다는 그 거문도 앞바다의 검질긴 물결무늬가

웃는 듯 마는 듯

한창훈 이마에도 몇 자락 있다는 것이다

 

 

 

멀리서 받아 적다

 

 

국화 마른 대궁을 베어비리려 낫을 들이대니

시들어 마른 꽃 무더기에서

뭉클한 향기 진동하다

 

서리 몇 됫박 뒤집어 쓰고

잎부터 오그라들 적에

오상고절도 어쩔 수 없구나 했더니

아서라 시취屍臭까지 향기로 바뀌어 내는 고집

그 꽃다운 오만 앞에서 낫을 거두다

 

안도하듯 다시 뱁새 몇 마리

그 그늘 아래 찾아들고

하, 고것들의 수작이라니

밤새 서설이 내려 꽃을 새로 피우다

 

애초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