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
저 홀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은 아닐까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게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 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장작 패는 법
때가 되어 베어진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에겐 추억이 있다네
잘린 나무토막을 보면 나이테가 보이지
나이테가 나무의 온몸에 결을 만들고 있지
결을 따라 바람이 드나들고
물이, 말하자면 나무의 피가 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장작을 팰 땐 포정*이 소를 다루듯 해야 하네
무리한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나무가 이룬 결을 따라 도끼날을 집어넣어 주면 돼
마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었던 그 모습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천장사가 육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에게 먹이는 조장처럼 말이야
포정의 소는 뼈와 살이 다 분리되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제 몸에 칼이 들어와 후비고 다녔다는 걸 몰랐다잖나
무엇보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가 물이었던 시절
나무가 바람이었던 시절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가 미리 내놓은 길을 찾아
길을 넓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나무가 쩍 박수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네
주의할 점도 있지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장자葬子에 나오는 소 잡는 데 도가 튼 백정
우산이 좁아서
왼쪽에 내가
오른쪽에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 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참돔
ㅡ 한창훈
소설가 한창훈의 책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어딘가에
"참돔회엔 물결무늬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거 시가 되겠다 싶어 한창훈에게
그것 내 시에 가져다가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그게 갸한테 있는 것인디 내가 어쩔 거여 갸한테 물어야제" 하더라
살다 보니 참돔에게 허락받을 일도 있어서 참 난감하였으나
분명한 것은 참돔에게 있다는 그 거문도 앞바다의 검질긴 물결무늬가
웃는 듯 마는 듯
한창훈 이마에도 몇 자락 있다는 것이다
멀리서 받아 적다
국화 마른 대궁을 베어비리려 낫을 들이대니
시들어 마른 꽃 무더기에서
뭉클한 향기 진동하다
서리 몇 됫박 뒤집어 쓰고
잎부터 오그라들 적에
오상고절도 어쩔 수 없구나 했더니
아서라 시취屍臭까지 향기로 바뀌어 내는 고집
그 꽃다운 오만 앞에서 낫을 거두다
안도하듯 다시 뱁새 몇 마리
그 그늘 아래 찾아들고
하, 고것들의 수작이라니
밤새 서설이 내려 꽃을 새로 피우다
애초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