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4 서울 신문 신춘문예
주선화
2014. 3. 21. 08:47
알 /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에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잇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것이니까
집을 나오는 길
두 발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얼굴과
머리카락이 엉키고
몸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흩어져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뭉쳐질수록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로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분류하지 않는 곳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바깥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반쯤 잠기는 몸
최초의 기분은 여기에 있지
출렁인다
다리 하나가 기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