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우포의 아침 / 주선화
주선화
2014. 12. 22. 10:17
경남문학 109 겨울호
우포의 아침 / 주선화
갑사 입은 여인이 청동거울을 들고 웃고 있네 홍
조 띤 귓볼 따라 헤실헤실 웃으며 살며시 걸어 나
오는데 진흙탕의 백련 봉우리가 막 피어오르는 듯
환해지는데 온통 환해지는데 둥둥 북소리 새떼 구
름 자북이 내려앉아 사락거리며 옷자락 쓸리어 푸
른 입 여는데 천상의 향기가 몽유도원 거닐 듯 울
려 퍼지는데 떨려오는데 온통 떨려오는데
꽃 대궁 들고 물길 자박자박 치네 뜨거운 햇살 어
깨를 밀어 뿌리의 근원을 찾아 땅속까지 더듬으며
젖어드는데 온통 젖어드는데 숭숭한 구멍 사이로
연밥 씨앗들 서로 고개 쳐들어 비좁다고 아우성이
네 큰 구멍 사이로 큰물이 노니는 듯 한껏 물오른
백련이 긴 기지개 켜네 무늬진 물결 흔들고 가네
온통 흔들고 가네
몇 억년의 시간 거슬어 오르네 젖은 땅속에서 부
활을 꿈꾸며 새록새록 잠이 들었네 할머니의 자장
가 소리가 나뭇잎 배를 타고 흐르고 물억새의 푹신
한 이부자리 속 어젯밤 쓸어 놓은 생명들이 아침마
다 울어대는 물닭새 소리에 기지개를 켜는데 미루
나무 우듬지 부스스 깨어나 햇살이 땅속 깊이 스며
들어 관을 밀어 올리네 저 너른 들판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