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먼길 / 문정희

주선화 2015. 3. 4. 13:03

먼길 / 문정희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 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 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