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보일러 만트라 / 정일근

주선화 2015. 6. 4. 10:06

보일러 만트라 / 정일근

 

 

우리집 나무 보일러는 전생이 티베트 라마승 같다

나무불 넣으면 보일러는 염불부터 먼저 한다

하루는 옴마니반메홈을 중얼거리고

또 하루는 히말라야 만트라를 노래한다

그렇게 긴 염불 뒤에 사람 한숨을 쉬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벽 하나 사이에 사는 늙은 라마승에게

오체투지의 경배를 올린다, 그해

히말라야 가우리 상카르산*의 곰파에서 만나

호흡으로 생명을 나눠 준 그 늙은 라마승

낮은 숨소리와 똑같아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착하게 낡은 것에게는 영혼이 깃드는 법이니

내가 왔다는 동쪽이 궁금했던 늙은 라마승

잠시 몸을 바꾸어 우리집 나무 보일러 속에 앉았는지

겨울밤 내내 나무 보일러의 만트라를 들으며

내 몸 안에서 터지는 설산 눈꽃에 아득해진다.

 

*높이 7,144m. 에베레스트 서쪽 58km 지점에 있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