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풋잠에 들다 / 신덕룡

주선화 2015. 10. 25. 09:27

풋잠에 들다 / 신덕룡

- 하멜서신

 

이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설명할 길 없습니다.

 

누구하나 눈길 건네는 이도 따라오는 기척도 없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가도 언제

나 제 자리, 떠난 자리로 되돌아옵니다.

 

멀리 강진을 지나 마량포구까지 앞서 갔던 마음들도

너덜너덜 찢겨진 채

왼 종일 쪼그려 앉아 나막신을 깎던 공방의 끌밥처럼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이건 악몽일 뿐이야 누군가의 꿈속에 끌려왔을 뿐이라고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지금 여기, 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한 백년쯤이나 됨직한

의문들, 벗어날 길은 아예 없겠습니다.

 

 

 

남씨(南氏)로 살아가기 1

-하멜서신

 

바짓가랑이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고

샘터에 앉아 세수를 하다가

 

채 가시지 않은

한줌 어둠과 아침의 푸릇한 안개 사이

꺼칠하니 낯선 얼굴을 본다.

 

분명히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거기

 

눈 감고 앉아

앞마당의 봄눈 녹듯 꿈이

내 몸 속에서 녹아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언제부터였나,

허리춤에 찬 호패(號牌)속으로 수렴되는, 상투가 제법 어울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듯 스스럼없이 마주하는 이 아침은?

 

끝내는 놓쳐버릴지도 모를

가늘고 질긴

슬픔이라는 끈을 쥔

남씨를 닮아가는 얼굴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