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새는 언제나 맨발이다 / 배한봉

주선화 2015. 10. 27. 10:28

새는 언제나 맨발이다 / 배한봉

 

주남저수지 얼음장 위에 서 있는 저 가창오리 떼 모두 맨발이다

발 동동 거리지 않고 비명도 내지르지 않는 걸 보면

저 맨발은 필시 우리가 양말을 신고 구두를 껴 신은 것 보다

더 강한 무엇으로 이루어졌겠다

 

저수지보다 깊은 어둠이 가라앉고

바람이 날 시퍼런 칼 한 무더기 던져주는 저녁

탐조객들 다 돌아간 둑길 벤치에 앉은 사내도 맨발이다

어깨 구부정한 남루 싣고 다닌 저 맨발 옹이 같은 굳은살이

양말이고 구두였겠다

 

사내의 침묵이 바람보다 더 큰 소리로 둑길의 마른 갈대 허

리를 꺾는 모양이다

창백한 달 아래 어둠이 잠깐 질리다 못해 이제는 숫제 새파

랗다 꽁꽁 언 맨발의 깊이 같다

저 깊이를 어떤 빛으로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일

저 크기를 무슨 말로도 밝혀낼 수 없는 일

 

저수지 갈대섬으로 새 떼가 다 몰려간 뒤에도 한 마리 남아

얼음장 서성이는 까닭 알 수 없듯

참 무겁고 힘든 저 맨발

꽁꽁 언 세상 바닥을 양말로 구두로 껴 신은 저 강철 보행의

맨발

 

 

 

바람과 새

 

바람이 온다고 나는 말했다.

바람이 간다고 그는 말했다.

 

그와 나 사이를 바람이 지나갈 때

 

그는 숨소리가 간다 하고

나는 숨소리가 온다 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핀 꽃처럼

우리가 한 공간에 서 있을 때

 

새들이 날아올랐다.

날아올라 하늘을 짊어진 새들이

시간을 잘라내듯

어느 순간 내 시야를 베어버렸다.

 

그곳에서 바람이 온다고 나는 말했다.

그곳으로 바람이 간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