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6년 신춘문예 (조선일보)

주선화 2016. 1. 15. 10:53

생일 축하해 /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지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께

기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