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나무 사원 / 김기리
주선화
2016. 1. 21. 16:17
나무 사원 / 김기리
천지간에 버려진 사원 없다지만
대신 오랜 세월을 돌은 나무의 슬하에 있었다
석상은 나무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나무는 돌의 몸에 뿌리를 내렸다
서로 몸 바꾸는 역사가 덥고 길었다
본적을 교환하는 동안
무풍나무 뱅골보리수가 돌계단으로 옮겨 앉고
계단은 흔들거리는 그늘을 얻었다
무너지는 방법을 아는 것은 돌의 재주다
나무는 그 돌의 재주에 장단을 맞추었을 것이다
저 결박의 부처를 다비장하면
햇살 묻은 나뭇잎 모양의 사리가 몇 줌은 나올 것이다
몇 해 전 몸을 열고 돌을 꺼냈을 때
일찍이 내 몸이 불길 식은 화장(火葬)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여기 폐허의 사원에 와서 알았다
그러므로 늙은 몸은 다 사원이다
그 사원의 군상(群像)들에게 두 손 모은 기억도 부실하여
곧 허물어질 폐허의 전조를 다만
담담히 바라보는 것이다
석양을 앉혀놓고 설법중인 폐허
그 폐허에 입을 달고 살아가는 누추한 아이들이
면죄부인 양 지폐를 조른다
사원을 받아먹은 울창한 숲
돌을 주식으로, 석양을 편식으로 견뎌 온 조 식습관이
문득 후덥지근한 허기를 몰고 온다
햇빛 탁발을 나왔는지 보리수나무 잎들이
일제히 일직보행으로 수근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