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물의 집 / 홍일표
주선화
2018. 6. 4. 14:29
물의 집 / 홍일표
물도 쉬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그래서 가끔은 집을 만드는 거다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알이 되는 거다
한 번 도 본 적 없는 어미를 죽어서도 몰라볼 거라고, 그래서 온몸이 눈이 되어 버린 물을 이해하는 저녁인 거다
그런 거다
혼자 떠돌던 물의 손바닥, 발바닥 외진 곳에 집을 짓는다 그걸 물의 눈물이라고 부른 거다 문밖에 나가 보아라 해거름에 얼굴 없는 누가 서성이고 있다 밥 한 끼 먹여 보내야 할, 해진 발과 옷으로 서 있는
내 몸에 세 들어 사는 물을 받아 적는 거다 글썽이는 물의 문장을 옮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물방울이 되는 거다 크고 맑은 집 한 채 지어 오래 머무는 거다 몸 밖이 어두워 사나흘 와병 중이라고 둘러대는 거다
물이 독채를 짓고 여러 날 알로 뒹굴다 부화하여
팔다리 가볍게 집을 나서는
그런 날이 있는 거다
공중의 첫머리를 열어 혼자 활공하는 새가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