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내 혀를 가지고 내 뺨 안에서 / 주선화 (2018년 경남문학 우수 작품상)

주선화 2018. 9. 14. 15:06

내 혀를 가지고 내 뺨 안에서*

                                              

                                     주선화



 

입안에 생물 하나가 살아요

 

말을 씹다가, 말을 뱉다가, 말을 삼키다가,

쓸쓸하고 씁쓰레한 우울은 반 박자 먼저 찾아와요

 

뺨에서 혀로 건너가는 일은 가깝고도 멀어

사라지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죠

 

뺨에 손길이 머물러요

입 안 가득 번지는 푸르스름한 물빛

 

너의 우울 속으로 잠기는 나의 불안이

흘러넘쳐요

 

이 춥고 긴 슬픔

 

오래 잠겨 잊혀 질 때까지

내 혀를 가지고 내 뺨 안에서 고요할 게요

 

 

*마르셀 뒤샹의 작품 제목

    

*경남문학 가을호 2018년  (124번) 



수상 소감



너는 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우산을 쓴다

너는 태양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햇빛을 피한다

너는 바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창문을 닫는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두렵다

- 밥 말리

 

시를 쓰고 또 시를 쓸 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지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시를 사랑하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을 때 나는 두렵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누군가 내게 거는 기대보다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더 무겁습니다.

그래도 이제껏 그래왔듯이 한 발 한 발 정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알아낸 것들에게 눈 돌리지 않겠습니다

더욱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