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호모 나이트쿠스처럼 / 주선화
주선화
2018. 12. 9. 09:43
호모 나이트쿠스처럼*
주선화
나, 오늘밤
젖과 꿀이 흐르는 저 휘황찬란한 불빛!
물어뜯을수록 강해지는 야성을 길들일 거야
지린내와 역한 구토를 견디는
새벽은, 닻을 내릴 수 없는 항구의 밤 같아서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텅 빈 거리의
널브러진 종잇조각 같아서
나는 원시부족의 한 집단이 되어
색색의 아이섀도우를 유쾌하게 칠하고
밤의 채찍을 휘두를 거야
비틀거리는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지하 동굴 속에서도
겨울잠은 자지 않을거야
오늘밤은 원나잇, 원하는 만큼
위하여!
* homo nightcus : 야행성 동물처럼 밤에 주로 활동하거나 밤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
그림자의 집
어스름이 여자를 끌고 가네
끌려가는 건 다 낡은 보행기
곱게 화장을 하고
걷는 건지 마는 건지 쓰러질 듯
아직은 여자인 채로
돌아오는 길은 잃어버리고
거울과 립스틱과 아이라인을 챙겨
여자를 끌고 가네
보행기의 바퀴는 그 자리를 맴도는데
하루를 마감하는 노을은 저리 붉은데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기억은
방향을 잃고 지독하게 쓸쓸하게 다무는데
*2018년 42호 마산문학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