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자두 / 허수경
주선화
2019. 2. 27. 13:53
자두
허수경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은 꿈을 꾼다
어제 나는 너의 마음에 다녀왔다 너
는 울다가 벽에 기대면서 어두운 걸
레로 바닥을 닦았다 너의 얼굴에는
여름이 무참하게 익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갈 여름은 해독할 수
없는 손톱만큼 아렸다 쓰고도 아린
것들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저 가루
는 눈처럼 자두 속에서 내린다 자두
속에서 단 빙하기가 시작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빙하기 한 가운데에 꿈
꾸는 여름이 잇속으로 들어왔다 이
것은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이었다
여름의 영혼이었다 설탕으로 이루어
진 영혼이라는 거울, 혹은 여름이었
다
너를 실핏줄의 메일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두나무를 바라보았
다 여름 저녁은 상형문자처럼 컴
컴해졌다 울었다, 나는. 너의 무덤
이 내 가슴속에 돋아나는 걸 보며
어둑해졌다 그 뒤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