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다음 페이지도 파도라면 / 이원

주선화 2020. 3. 6. 16:44

다음 페이지도 파도라면

- 이원



펼쳐 놓은 책은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고

그 페이지를 읽어야 했지


책은 꽤나 두꺼웠거든


문제는 죽은 사람들이 그 페이지로 자꾸 들어가는 거야

펼쳐 놓은 페이지가 거기였으니

거기뿐이었으니


그거 알아? 죽은 사람은 무거워

하나 남은 표정을 못 놓치거든

점점 내가 무거워진 것은

그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기 때문이지

무거워서 들 수가 없고

거기는 와글와글이어서 상가의 음식은 입뿐인 허기여서


상가의 근조는 여기로 몰려들었던 거야


사실 나는 몰라 죽은 사람을 들어 본 적이 없어

죽은 얼굴을 본 적은 있지


이 책이 얼마나 거대한 줄 알아?

놀랍게도 어마어마하게도

딱 책상만 해

지금까지의 시간을 다 쏟아 부어

한쪽으로 접으면

양쪽이 없어지고

표정은 봉인되고


책상은 심연의 책이 된다


다무는 입술과 벌리는 입술을 떼어 놓지 않으면

오른쪽 왼쪽 영영 잃어버린다고 약속하면

입들은 눈보라로 던져지면


다시 출렁일지도

다시 운동화를 신고 문 밖으로 나가게 될지도


그만!

그만1

그러면 나는 볼 곳이 없어져


나는 내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