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눈이 멀다 / 장진혁
주선화
2020. 4. 27. 09:49
눈이 멀다
- 장진혁
너에게 가닿지 못한 이야기는 다 멀었다
눈에 빠져 죽었다
침묵은 보이지 않는 눈의 언저리를 한 바퀴 돌아갔다
바깥이 되었다
눈이 멀어서 밥이 멀고 내가 멀어서 그림자가 멀었다
어떤 눈이 나를 송두리째 담아 갔다
문득 문이 열리고
306동 불이 켜지고
모퉁이 앵두나무에 앵두가 익어 갔다
세상은 공중인데 내 손은 사무적이었다
몇 발자국 세다 보면 길은 끊어지고
손끝에 닿는 대로 기억이 왔다
눈이 고요하였다 끝이 넓었다
나는 고요를 떠다가 손을 씻었다
아카시아 향기 같은 것이 종일 흔들렸다
마음 하나가 눈언저리에 오래 있다 사라졌다
누가 먼눈을 들어다보랴
눈은 멀리서
볼 수 없던 것을 보고 있다
먼 오후가 가득하였다
아무리 멀어도 더 멀지는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