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사라진 입들 / 이영옥

주선화 2020. 6. 28. 12:44
사라진 입들
ㅡ이영옥


잠실 방문을 열면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내렸다
어두컴컴한 방 안을 마구 두드리는 비,
애벌레들은 언니가 썰어 주는 뽕잎을 타고 너울너울 잠들었다가
빗소리를 몰고 일어났다

내 마음은 누가 갉아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를 동안
언니는 생의 급물살로 허우적거렸고
어두운 방을 나오면 환한 세상이 눈을 찔렀다

저녁이면 하루살이들이 봉창 거미줄에 목을 매러 왔다
섶 위에 누에처럼 얕은 잠에 빠진 언니의 숨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명주실 같았다

잠을 모두 잔 누에들은 실을 뽑아 제가 누울 관을 짰지만
고치를 팔아 등록금으로 쓴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되지 못했다
언니가 누에의 캄캄한 배 속을 들여다보며 풀어낸 희망과
그 작고 많은 입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른고치를 흔들어 귀에 대면
누군가 가만가만 흐느끼고 있다
생계의 등고선을 종종걸음 치던
그 아득한 적막에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