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고래 우네 / 이영옥

주선화 2020. 10. 18. 14:22
고래 우네
ㅡ 이영옥


가지런히 썰어 놓은 고래 고기 한 접시 앞에서 생각하니

아버지는 퇴근길에 자주 장생포 항구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고래 해체 작업반들이 갈고리에 고래를 거꾸로 매달 때
말없이 고래의 시간에 소금을 찍고 고래처럼 나가떨어진 아버지

잠깐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고래뿐이었을까

아버지가 잡혀 온 고래처럼 마신 소주를 눈물로 뱉어 낼 동안
어미 잃은 새끼 고래들은 젖 냄새를 잊기 위해 먼 바다를 떠돌았다

석양이 자나가는 선창은 횡설수설하고
작살 맞은 고래 피가 물감처럼 풀어진 바다는
갈매기가 땀에 전 수건처럼 떨어지는 저녁에
생의 부레는 어떻게 떠오르는 힘을 아래로 가라앉혔을까

우네* 한 점을 입안에 넣고 고래가 울고 내가 운다
맛 좋은 고래 고기를 먹으며 내가 운다

나를 업고 골목에 숨어 있던 엄마는 아직도 내 기억에 숨어 훌쩍거리는데

고래가 우네 내가 우네
아버지를 부위별로 해체해 쫄깃쫄깃한 가슴살을 발라 먹고
내가 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