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주먹만한 구멍 한 개 / 이영옥
주선화
2021. 1. 7. 10:15
주먹만한 구멍 한 개
ㅡ 이영옥
바람이 자전거의 녹슨 귀를 때렸다
마른버짐이 번져가는 둑을 내려가
어버지는 강바닥을 망치로 깼다
얼음판은 쉽게 구멍을 내주지 않았고
한 떼의 쇠기러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겨우 주먹만한 숨통을 뚫은 아버지는
무료한 생이 지나가길 기다렸고
나는 나무토막을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마디를 가진 것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몇 번째 마디에 머물러 있는 걸까
불 꺼진 자리가 얼룩으로 누웠다
아버지가 뚫어 놓은 구멍은
헛것만 낚아 올리다가 없어졌고
그 깊고 아득한 구멍은
마침내 내 안에 커다랗게 입 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