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첫밥 / 문성해
주선화
2021. 2. 26. 11:01
첫밥
ㅡ 스무 살의 너에게
ㅡ 문성해
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
어느 늦가을 어둑어둑한 목소리의 부름을 받는다는 거,
집에 밥이 없으면
식은 밥통에 슬슬 눈이 가는 나이야
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
희게 재잘거리는 쌀들 속에
보드라운 너의 손을 꽂아본다는 거
너의 이름을 밀어 넣는다는 거,
너는 이제 밥이 그냥 오는 게 아님을 아는 나이
비 갠 여름 오후의 그늘에서 밥이 이팝꽃처럼 스르르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너와는 상관없이 온다고 알았던 신비스러운 나이가
이제 너에게는 없단 거
슬프지 않은가,
밥이 없는 초저녁의 쓸쓸함을 아는 나이가 된다는 거,
그래서 유리창에 어둠의 고함소리가 닥치기 전에 슬픔을 휘젓듯 쌀을 씻고
푸푸 밥이 되는 소리에 조금씩 안도하는 나이가 된다는 거
이제 밥은 구름이나 바람, 적어도 너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저 둥글고 깊은 구형 전기밥솥의 동력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린 너는
이제 딱딱한 지구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
무엇보다 이 세계의 신비한 마술쇼가 끝났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