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물소리를 쬐다 / 윤이산

주선화 2021. 3. 9. 11:15

물소리를 쬐다

 

ㅡ 윤이산

 

 

개울가에 나앉아

물소리에 손을 씻는다

 

그건

빈손으로 들어선 객지에서

오솔길 하나 내는 시간

 

오솔길을 걸으며

천근만근 젖은 무게를 말리는 시간

 

잔걱정 많은 손금을 펴

바람 한번 쐬어 주는 시간

 

벼랑 끝에 선 길을 돌려세워

담배 한 개비 물려 주는

 

물소리에 손을 씻고 있노라면

가난하고 간단하고

단촐해지는

 

아무렴,

내가 다 잘할 수도

내가 다 옳을 필요도 없는 거, 맞지?

 

벼랑 끝을 돌려

물소리 밖으로 돌아온 후에도 오래

잠잠히 타오르는 물소리

 

 

 

시집 ㅡ 물소리를 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