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생을 엿듣다 / 이혜민
주선화
2021. 3. 13. 11:38
생을 엿듣다
ㅡ 이혜민
귀에서 냇물이 쉼없이 흐른다
가끔 놀란 송사리 떼 돌 틈으로 숨고
움켜진 고막 사이로 박제된 풍경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날이 많다
설거지를 하다가 한 아이 흐느낌을 엿듣고
샤워를 하다가 어미 치맛자락을 만나고
흐르는 물소리 따라
머리를 조아리는 날이 많아진다
냇물이 귓속에 차올라
속절없이 시간 밖으로 떠 밀려 가기도 한다
현실이라고 산 벚꽃 피는 날이 아닌데
생의 아픈 소리들만 떠다니는가
내게 시냇물을 흘려보내지 마라
엿듣고 싶은 그 무엇이 있기에
강바닥을 후비는 울림을 앞세울까
삭은 어린 나의 부스러기를 만나
자다말고 이명소리에 놀라
어깨를 들썩인다
고추잠자리
남자아이가 고추를 달랑거리며
외줄타기를 한다 빨랫줄에서
커진 눈 굴렁쇠처럼 굴리며
굳은 살 박힌 발꿈치로 줄을 잡고
사뿐사뿐 공중을 들었다 놨다
촉수끝이 뾰족히 일어선다
허공도 출렁 거리며 춤추는 시간이다
춤사위에 넋이 나간 구름은
어깨춤 둥실둥실
바람은 부채끝에 매달려 낭창낭창
긴장한 땀방울만 후두둑 쏟아진다
뼛속까지 긁어내랴 바닥 기면서
허물 벗고 날아오를 날만 손꼽았던 수많은 날들
저 아이는 알까
날개를 펴기까지 빨갛게 익은 상처가
허공 이쪽에서 저쪽을 단숨에
찢었다 꿰맨다 숨소리마저 시침질이다
마른 침 꼴깍 삼키는 사이
빨갛게 익은 아이는
착지도 하지 않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허공 너머로 줄을 끌고 사라진다
내 혼을 쥐나게 하는 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