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문학동네 시 신인상 당선작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가만히 동호회
ㅡ 변윤제
가만히 멈춰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시작된 동호회.
가만히 멈추는 건 무엇인가요. 멈추는 것과 가만히 멈춤은 무슨 차이일까요.
먼지떨이를 쓸어내리며 생각했습니다.
수백 갈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했습니다 먼지떨이로 사람을 때리면 회초리가 되고요. 먼지떨이로 반찬을 집으면
젖가락이 되는데.
가만히 멈추면 가만히가 무엇이 되지요?
요를 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불로 나를 돌돌 말아 쥐는 사람아. 김밥 놀이를 시키며 내 숨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아. 어머나.
오이의 기분은 희박하구나? 그래서 한쪽이 창백하구나.
그대여.
내게 가만히를 명령한 그대야말로 가만히의 명수.
타르트를 파는 저 세탁소를 보아요.
가루가 떨어져요. 옷걸이엔 밀가루 포대가 잔뜩 걸려 있답니다. 세재 대신 흰 가루 쏟아지고.
왜 우리는 항상 가는 곳만 가야 하나요?
이 세탁소에 온 손님은 아무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새하얀 건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당신만이 매일 저 세탁소에 옷을 맡겨요. 검고 푸른 옷마저 희게 만드는 저 세탁소를.
완벽한 하얀색을.
가만히는 그렇게 꾸준한 일. 늘 하는 것을 늘상 반복하는 일. 그런데 제게도 가만하라니요?
가만히를 일생 기르면서 가만히를 가만히 가르치는 당신.
제자리에 멈춰 돌아가는 세탁기 군단.
진정한 의미의 세탁에 대해.
당신은 알고 있었고.
당신이 찾아온 옷가지는 타르트가 되었고. 포도 향이 나고. 어떨 땐 빳빳한 쿠키의 감촉이 제 목젖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가만히 있어.
그 말이 제 유년을 하얗게 탈색하는데.
발버둥.
토악질. 새하얀 구토물의 겨울. 가만히 동호회가 발버둥으로 완성되고야 마는데.
가만히에게 편지를씁니다.
가만히야.
나는 한 번도 너 같은 종류의 가만히를 원한 적 없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한 가만히 동호회.
가만히 부르는 순간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떨어져나가고.
제 털을 가만히 기르고 있던 먼지떨이가 부서져내리고.
벽에 가만히 스며들고 있던 내 등이 내 척추에서 떨어져나가서.
사방이 저로 가득한.
동호회라기보다는 가만히 의회에 가까워집니다. 가만히로 구성된 제국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가만히 다가오는 비명에 대해.
가만히 나라의 폭군으로서 명령합니다.
꺼져.
가만히 꺼져.
세상 모두가 일제히 발버둥친다면, 진정한 가만히가 완성되는 것?
시속 칠백 킬로미터로 달아나는 가만히 국민들.
도저히.
도저히.
결정적으로 나는 가만히 있게 되는 겁니다.
코끼리가 없는 코끼리 유치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코끼리가 들어오는 순간 알게 되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동경했는지.
육중한 네 다리와,
유치원을 기둥째 뿌리 뽑는 압도적인 코.
우리 귀여움이 바라왔던 파괴적이고 절대적인 힘.
그대여.
가만히 멈추라고요?
가만히야.
나는 나의 가만히를 끌어안습니다.
가만히의 기다란 코가 내 목을 살며시 조릅니다.
아, 가만히.
그리하여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가만히 동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