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국수 /성선경

주선화 2021. 10. 8. 10:34

국수

 

ㅡ성선경

 

 

뿌리도 없는 헛된 바람이

주인 행세를 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살아있으니 오늘이 생일生日

후루룩 후루룩 면발을 빨아 들이키며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것이다

달디 단 사탕을 입에 넣은 적도 없는데

입에 단내가 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국수가 한없이 당기는 날이다

살아있으니 오늘도 생일生日

후루룩 후루룩 면발을 젓가락으로 감아올리며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의 끝으로 끝으로 달아나도

나를 감아오는 이 지상의 결초結草들

발을 붙들고 발목을 잡고 발을 걸고

허어 참! 허어 참내!

이런 날은 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절간의 스님조차 미소 짓게 했다는

후루룩 후루룩 후루루룩

저 실날같은 생명의 희망줄을.